2016 파문_시즌3
2016 파문_시즌3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선정 작가
파문 시즌3 제7회_ 홍지호 시인편
42 minutes Posted Jan 18, 2017 at 7:32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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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송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등단 5년 미만의 신진작가들을 지원육성하는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에 선정된 작가를 초대, 그의 삶과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눠보는 팟캐스트 입니다.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는 만 35세 미만의 차세대 예술가의 발굴과 창작 역량을 향상 시키기 위해 새로운 창작주제 및 소재의 조사연구와 창작화 과정을 지원하고 기존의 차세대 예술가육성사업(AYAF)와 창작아카데미사업이 통합된 사업입니다.)
<홍지호 시인의 시 4편>
정원에서
정원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나는 정원을 정원이라고 소개한다. 우리의 세대에서 정원은 주로 공동의 것이란 말을 하려다 말았고, 모두의 것이라는 것은 누구의 것도 아니라는 생각도 말하지 않았다. 마음은 누구의 것입니까. 마음이라는 것은. 그러나 누구의 것도 아닌 단어들이 부유하는 정원을 걸으면서 우리는 걷고 또 걸었다
내일도 걸을까요? 당신이 물었고, 오늘은 오늘의 것 내일은 내일의 것이라는 생각을 말해버렸다. 당신은 당황하지 않았지만. 당신은 누구의 것입니까
아주 조용한 정원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주 아주 조용한 마음의 정원에서 나열된 문장들이 나의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있었다.
나는 나의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말하지 않았고
후회한다는 생각을 말했던 것 같다.
어둠과 정원에서
혼자 걸어왔지만 둘이 걷던 길을 혼자 걸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둠과 정원에서 그러나 어둠과 정원에서. 어둠을 어둠으로 회피하지 않았을 것이다. 밤을 맞았고 어둠은 그럼에도 색이 아니라 바탕에 가깝다. 그러나 가끔 배경이 사건을 지배하는 순간 같은. 어둠. 소란스럽게 뻗어있는 가지를 가진 나무를 낮에는 보았으나 아주 고요한 정원이다. 어둠속에서 보이는 것은 까만 나무이다. 어두움보다 까만 나무이다. 어둠이 내려앉은 고요한 정원에서 까만 나무에 기대 앉으면, 정면에 보이는 것은 없다. 그러나 정원에는 정면만 존재하지 않는다. 눈을 감는다. 어둠 속에서 눈을 감는다는 것은 사건을 믿는다는 것이다. 일어날 사건 역시 믿는다는 것이다. 언제나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마음을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당신이 옆에 있었다면 절대 눈을 감지 않았을 것이다.
어둠이 내려앉은 아주 아주 조용한 정원에서
로비
이곳은 로비다. 그들은 로비에 마주 앉아 있다. 로비에는 약간의 음악이 흐르고, 그들은 약간의 음악이라는 표현이 완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완전히 틀리지도 않은. 로비는 분주하지만 고요하다. 음악은 그들이 평소에 좋아하던 아티스트의 리믹스 앨범 수록곡이고.
나무가 흔들려서 슬픈 것 같다고 한 사람이 중얼거린다. 그는 우리가 같은 계절을 지나는 것이라면 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생각했지만 로비에 흐르는 음악의 제목은 다른 것이다. 모든 음악은 리믹스지라고 누군가 생각하자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를 피해 많은 사람들이 로비로 들어왔고 비가 내리면 안과 밖의 경계가 선명해졌다.
그들은 이제 창밖의 풍경을 함께 바라보고 있다. 마주 앉은 사람도 나무가 흔들려서 정말로 슬퍼보이네 중얼거렸고. 이제는 계절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도로에 심어져 있는 여러 그루의 나무 중 유독 한 그루의 나무만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로비는 오래 머물기 위한 곳이 아니지 누군가 말했고 그들은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떠나고 로비에서 처음 들어보는 음악을 누군가 듣는다. 음악의 리듬은 로비의 고요와 더 어울리지만 창밖의 풍경과 음악의 개연성이 무시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로비는 잠깐 머무는 곳. 그러므로 로비는 완전하지 않고, 그러므로 누군가에게는 로비를 떠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비 내리는 창 밖에 한 그루의 나무만이 흔들리고 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나무는 스스로 흔들지 못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거목
할머니는 기도하셨다 마음속으로
빌고 빌었다 큰 나무 앞에서
지나치게 큰 나무들은 주로 혼자 있는 것 같았다
무엇을 쳐먹고 저렇게 커졌을까 끈질기기도하다
중얼거렸다 마음속으로
할머니와 나는 마음속으로 그랬기 때문에 알 수 없었다
마음을 알 수는 없었다
할머니가 기도할 때 할머니 할머니
부르지 못했다 어린 나에게도 기도가
간절해보였기 때문에
자라면서 할머니 할머니
부르는 것이 어려워졌다 간절해보였기 때문에
할머니
보고싶은 할머니
어릴 적 미워하던 큰 나무 앞에서 할머니
불러보았다 혼자 있는 거 같았지만
큰 나무에는 벌레가 많았고 기어다니는 것들이 많았다
살고있는 것이 많았다
유독 그늘이 큰 나무였다
나무는 나이가 들어도 계속 자라는데
할머니
나무가 크니까 낙엽이 더 많이 떨어진다고
낙엽을 치우는 사람이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