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파문_시즌3
2016 파문_시즌3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선정 작가
파문 시즌3 제4회_ 최지인 시인편
52 minutes Posted Jan 4, 2017 at 4:35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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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송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등단 5년 미만의 신진작가들을 지원육성하는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에 선정된 작가를 초대, 그의 삶과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눠보는 팟캐스트 입니다.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는 만 35세 미만의 차세대 예술가의 발굴과 창작 역량을 향상 시키기 위해 새로운 창작주제 및 소재의 조사연구와 창작화 과정을 지원하고 기존의 차세대 예술가육성사업(AYAF)와 창작아카데미사업이 통합된 사업입니다.)
<최지인 시인의 시 4편>
주말
허벅지 위에 아내 허벅지 놓인다
아내는 왜 그럴까
나는 꽃 머리들 후드득
쏟아지는 걸 본다
태풍이 지나갔다
머리 한쪽 쑤신다
아내는 회사에
나는 병원에
모두 갈 곳이 있다
모든 게 그럭저럭
화분에도 영혼이 있다
화분에 심은 식물들이 말라 죽는다
달라지지 않는다
알 수 없는 건 우리
그러다 몇 가질 적는
아내는 죄가 없다 나는 대기실에서
패션잡지를 본다 곧 불릴
이름 병원에서 법원에서 감옥에서 도로에서─
신호등 불 바뀐다
빨간 이름
파란 이름
가여운 이름
생일 축하해
우리는 외롭고
모국은 사람들에게 돈을 요구하고
사람들을 향해 총검을 겨누고
창가의 책들이 햇볕을 쬔다
노랗게 부스러지는 것도 괜찮다
아내와 나
뒤틀린 종이처럼
침대 위에 있다
*
달궈진 프라이팬에 마가린 한 스푼
식빵을 굽고 그 위에 달걀 프라이
케첩과 설탕 조금
식빵 두 장 포개어 있다
그 사이 축축하고
부드러운
건조대에 널린 수건들 손목에 걸린 갈색끈 저녁 9시 30분의 분주함 분홍색 샤워타올 “잠깐 벌려봐”라고 말하는 입 타일 틈에 낀 곰팡이 하양 거품 간지럼 피우는 손 그리고
테라스에서 맥주 마시기 사람들 흉보기 엘리베이터에서 키스하기
담배 연기 자욱한 공원 벤치 크림색 푸들 새벽 3시의 악몽 숨 아내와 나 토라진 얼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 미워하는 것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나눠 먹고 헤어지는 것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읽는 것
빨간색 현관문을 보고 ‘다 왔다’고 안도하던 때
까지
*
샌드위치 크게 한입 문다
아내가 화분에 물 흠뻑 준다
창밖으로 보이는 고물상
미성년
많은 사람이 죽었고
나는 한 줄도 쓰지 못했다
기타 교본을 보며 기타 줄을 눌렀다
이상한 소리였다 더 세게 줄을 눌렀다
소리는 여전했고 손끝에 붉은 자국 남았다
*
남자는 여자의 젖꼭지를 빤다
나는 숨죽인다
두 손이 젖을 주무른 것을 본다
그 아이 나를 알고 있다
나는 그 아이 엉덩이를 물어뜯기 위해 짐승처럼 뛴다
아이 웃으며 미끄럼틀 탄다
일제히 비명
나는 턱에 힘주고 놓지 않는다
사람들이 나를 둘러싼다
둘러싸고 운다
멈추지 않는다
바깥에서 남자가 고함을 지른다
물건 깨지는 소리 나고
나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 베개로 귀를 막는다
바깥의 여자는 죽고 싶을 것
깜깜하고 축축한 침대에서 혼자
개는 도로에서 죽지 않고 있다
긴 혀 내밀고 있다
*
여자의 가슴에 종양 두 개 자라고 있다
하루에 세 번 항암제를 삼키고
위로할 수 없다 나는
자꾸만 무너지는 집을 붙잡고 있다
여자의 눈은
좁은 골목 낮은 담장
공원을 걸을 때 부딪히는 손
아프지도 않은데
아픈 척하는
빈 벤치들이 늘어서 있다
나는 조용히 여자의 뒤를 따른다
여자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멀리
멀리
열차 문이 열리고 닫힌다
얼굴이 희미하다
얼굴이 희미하다
나는 작다
나는 죽지 않고
버스가 떠난다
어떤 일이든 가능한 것처럼
사람들이 대합실에 모여 있다
사소한 유서
1.
너의 귓불 구멍이 넓어진다 나는 구멍을 통과한다 너는 귓불에 담배를 끼워두곤 했지 놀이터 그네에 앉아 라이터 불을 켰다가 껐다가 구역질을 하면서 너를 받아들이고
의자에 앉아 귓불을 맡긴다 너는 책상에 팔꿈치를 올리고 앉아 있다 찢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창가에 앉아 콜라를 마셨지 너의 손을 잡았던가 창밖의 사람들이 흘러 다녔어 넌 긴 터널이었고
경적이 울린다 횡단보도에 멈춘 승용차에서 네가 내린다 뺨을 때린다 죽으려던 건 아니었어
다리를 건넌다 마른 강에서 너는 헤엄치고 있다 악취가 올라온다
2.
자전거를 타고 10톤 트럭을 따라간다 나는 호루라기를 분다 멈추라고 했어 듣지 못 했니? 항상 꽁무니를 쫓았잖아
10톤 트럭이 손가락 세 개를 뭉갠다 삑삑 나는 트럭 밑으로 들어가 손가락을 줍는다 뼈 으스러지는 소리
듣지 못해 유감이야 눈 좀 봐 우습게 빨갛다?
네가 내 배를 가른다 손가락을 넣는다 너는 꿰매다 기침을 한다 좀 참지?
나는 공중전화 부스에서 너에게 전화를 건다 깨진 유리로 바람이 들어온다 차라리 죽을 걸 그랬어
문을 잠근다 책상에 일렬로 세워둔 알약 숫자를 헤아린다
베란다 창문으로 빨랫대가 보인다 널린 속옷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3.
욕조에 물을 받는다 변기에 네가 앉아 있다 가랑이를 오므린다 보면 또 어떠니 락스물을 마셨는데 멀쩡하더라 다 누면 말해
엽서에 네 사진이 붙어 있다 나는 화장대에 앉아 거울을 본다 엽서를 구긴다 손톱으로 손목을 파낸다 베개 밑에 녹음기를 넣어 둔 거 알아 일부러 소리를 크게 냈지
난간에 기댄다 아래에 네가 있다 손을 흔든다 참 많구나 무수히 나를 지나쳤어
시장 골목에 의자가 놓여 있다 형광등이 모두 꺼져 있다 네가 의자에 앉는다 사람들은 잠들어 있고
불운한 나를 상상하니?
밤나무 가지에 원피스가 걸려 있다 목이 꺾여 있다 밤송이 떨어진다
리얼리스트
의자에 앉아 커터칼 꺼낸다
4B연필 길게 깎는다
벌거숭이 넷이 어깨에 가마를 지고 있다 일그러진 얼굴들 숨 몰아쉰다 양손으로 가마 부여잡는다 쓰러지지 않도록 어멈과 죽은 형제들 끝나지 않는다 이 삶 가마 위 거대한 머리를 한 괴물 눈 부릅뜨고 이빨 드러낸다
이빨이 동맥 깊숙이 파고들 때 머리 셋 달린 왕은 눈 감았다 다문 입속에 처녀들의 심장이 아직 뛰고 있다 여럿 부모가 그 앞에서 머릴 조아렸다
왕이 괴물 위에 올라탄다 가부좌를 튼다 수많은 손 펼쳐 보인다 손바닥에 껌뻑이는 눈—형제들의 머리를 꿰어 목걸이를 만드는 왕의 장인들 긴 송곳으로 관자놀이에 구멍 뚫는다 바닥에 놓인 양동이 피와 살점 가득 찬다 벽에서 사람의 팔 무수히 돋아난다 무고한 팔들이여
누군가 기침
나무문 삐걱대며 열린다
*
미술관 닫혀 있다
울타리 너머 인부들 그늘에 앉아 있다
땀 흐른다
동자는 오늘 밤 이곳에 머물기로 했다 아침부터 쉬지 않고 걸었다 호숫가에는 부랑자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 맨발이었고 거죽 사이로 늑골이 앙상했다 그중 하나 한쪽 무릎 세우고 세운 무릎에 양손 모았다 그 위에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할 수 있는 건 그뿐 동자는 바라보았다 검녹의 호숫가를 큰스님 같은 사내를
큰스님은 죽음을 예감했었다 언젠가 한 번 딸 얘길 해주었다 혼잣말 중얼거리듯 단편들 늘어놓았다 그중 기억 남는 건—도로에서 택시를 기다린다 쇠파이프 실은 1T 트럭 커브를 돌다 그대로
*
책상에 노트 한 권 펼쳐져 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사내는 호숫가에 있다 사람들 호스텔 강당에서 무리 지어 술 마신다 몇은 춤춘다 몇은 목소릴 높인다 몇은 자릴 뜬다 술이 바닥나고
나는 지하실 계단을 내려간다
그 아래 죽은 형제들 불안 국가의 무능 브로커들의 은밀한 언어 돈 빼앗고 복부에 칼 쑤셔 넣는 불한당
사내가 차를 몰고 마트에 간다
차가 언덕을 내려간다
멈추지 않고 상점 쇼윈도를 향해
라디오에선 어젯밤 사건
움푹 팬 나무 밑동 위에 어멈 앉아 있다
*
담벼락에 박혀 있는 못 굵은 노끈 걸려 있다 개 한 마리 목매달려 있다 대롱대롱 개의 신음
소년 창문으로 개를 지켜본다 죽은 듯 축 늘어졌다 이내 온 힘을 다한다 불쑥 창문 불쑥 창문들
여러 개의 낯선 눈
개의 항문에서 똥덩이 몇 개 뚝뚝 떨어진다
서랍에 가위가 있었다
험상궂은 조형들—신이 있다면 그 신은 그림자를 본떠 세상을 만들었겠지 그것은 그의 몸보다 작았겠지 그곳 사람들 낮에는 말라죽고 밤에는 얼어 죽었겠지
당최 우릴 빚은 이유가 뭐요
밤낮으로 사랑하고 사랑하고
비바람 멈추지 않는다
언제든 추락할 수 있다
도로 꽉 막혀 있다
*
김 선배는 나를 배신했다
나는 그와 다른 길을 갈 것이다
비가 쏟아졌다 파도가 선박을 집어삼켰다 흔들리는 삶 우린 작업실에서 죽으려고 했다 고통스럽지 않게 구조조정이 있을 예정
박 선배는 팔걸이가 없는 의자에 앉아 허리를 굽히고 나에게 속삭였다
나는 내가 아무도 아니어서 억울해
엉엉 울었다
이번 달 카드 값은 연체되었다 월세는 밀려만 가고 찬장에 썩지 않을 통조림 속 음식
그물에 걸린 미래를 건져내기 위해 몸을 던져야 했는데
처형당했다 구경하기 위해 사람들 모였었다
벽 맞대고 서 있던 여섯
도시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비참한 일을 겪게 마련이다
일상은 계속될 것
총성이 멈추면
*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린다
무사히 이륙하겠지
착한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