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파문_시즌3
2016 파문_시즌3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선정 작가
파문 시즌3 제2회_박세미 시인편
40 minutes Posted Jan 1, 2017 at 9:4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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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송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등단 5년 미만의 신진작가들을 지원육성하는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에 선정된 작가를 초대, 그의 삶과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눠보는 팟캐스트 입니다.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는 만 35세 미만의 차세대 예술가의 발굴과 창작 역량을 향상 시키기 위해 새로운 창작주제 및 소재의 조사연구와 창작화 과정을 지원하고 기존의 차세대 예술가육성사업(AYAF)와 창작아카데미사업이 통합된 사업입니다.)
<박세미 시인의 시 4편>
‘ ’
그녀는 하루에 한 글자씩 일기장에 적었다
어떤 날은 ‘돌’이라고 썼고, 어떤 날은 ‘가’라고 썼으나
그것은 모두 새였다
어제는 ‘불’이라는 글자에서 자신의 발에 입 맞추는 새를 보았고
오늘은 ‘새’라는 글자에서 풍선에 매달린 새를 보았다
어느새 그녀는 자신을 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뼈’처럼 둥지를 틀고 ‘활’처럼 몸을 일으켰으며 ‘빵’처럼 부풀었다가 ‘칼’처럼 슬기로워졌다 ‘실’처럼 춤추었고 ‘눈’처럼 나무에 앉아 쉬었다
그녀의 몸에는 새떼가 뚫고 지나간 모양이 남아있었다
어떤 새는 그녀를 지나며 솟아오른 것 같았고
어떤 새는 미처 그녀를 통과하지 못하고 부딪쳐 추락한 것 같았고
어떤 새는 그녀의 가슴에 그대로 박혀 숨이 된 것 같았다
검은 콩 하나가 있다
차가운 식탁 위에
있다
거꾸로 세워진 유리컵에 갇혀 있다
천장은 투명한 만큼 무겁다
나는 꺼내줄 수 있다
방 안에 앉아 있다
벽은 나의 등에 기대어 있다
움직일 수 없다
방문은 누가 열어주나?
도마 위에
있다 검은 콩 하나가
거대한 식칼의 날을 마주보고 있다
나는 찍어 내릴 수 있다
방은 밤 한시에 가장 밝게 타오른다
시체처럼 누워있는 내가 있다
소리 지르지 않는다
오래 달궈진 프라이팬 위에
있다 검은 콩 하나가
나는 불을 끌 수 있다
검은 콩과 나는 익는다
그곳에 가만히 있다
도깨비
죽은 식물의 뿌리가 공중에 있는지
손 대신 갈고리를 가졌는지
발바닥에 신앙이 있는지
왼쪽 눈으로만 본다
커튼 뒤를 숭상한다
커튼과 창 사이의 간격
그 두께는 완벽해
숨겨진 빛의 맥박
쿵쿵 발을 구르면 온몸에 피가 돈다
머무를 방이 없구나
방망이를 휘두를 때
맞아죽는 상대가 없고
마주 볼 내가 없고
날마다 두 손을 모으고, 가지런히 두 무릎을 꿇어도
변신은 순식간이야
튀어나올래
베란다의 차가운 바닥에 오래 앉아 있을 때
눈동자가 굴러 떨어진 가장 어두운 곳에서
약속을 어기고 유리창이 깨지면
검정 바탕이 될래
단 하나의 눈을 가질래
혼자서의 낭독회
커튼은 고백하기 좋다
눈썹과 코끝을 스치며, 커튼은 자꾸만 바닥으로 늘어지고
등에는 투명한 창이 매달려 있지
술래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커튼을 빌려 나타나는 입술의 형상
목소리는 입술의 모양보다 늦게 온다
그러니까 혼자는, 후회를 기다려
베란다 쪽에서 내려다보면 화단,
복도 쪽에서 내려다보면 아스팔트 바닥이네
그러니까 혼자는, 죽기 좋은 곳을 확인해
난간은 고백하기 좋다
햇빛을 반사시키며,
옥상은 혼자를 튕겨내고 싶어 하지
목소리는 공중에 내민 발보다 늦게 온다
낭독을 마치고 나면,
반가운 택배를 기다리고
우리는 친구처럼 둘러 앉아 커피를 마시기도 해
그러니까 모두는, 혼자가 되어서야
낭독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