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척모] 청죽회를 척결하는 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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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gle Joe
도청지하에 얼굴에 흰페이트 칠한 시신들 다수 있다
8 minutes Posted Feb 13, 2023 at 1:47 am.
1996년 광주광역시 의사회에서 발간했던 5.18의료활동이라는 책에 발간위원인 조석필 의사선생님께서 그 당시에 자신의 일기장을 그 책에 기고를 한 겁니다.그 일기장 1980년 5월23일자의 도청앞 오후4시 군중집회 때 도청안 지하실 에 신분증도 없고 얼굴에는 하얀색 페인트가 칠해진 시신 38구가 있다 이런 소문이 쫙 돌았다는 겁니다.그 당시 그 조석필 의사선생님은 전남대 소아과 레지던트 1년차였다고 하면서 그런 기고를 한 겁니다. 여기서 왜 군중들한테 그런 소문이 돌았냐 하면은 시신을 찾고 있는 군중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그러니까 실종자 가족들은 어디 시신 있을까? 이거를 애타게 찾고 있었을 때 그 당시에 도청을 출입할 수 있었던 사람들 중에 시신의 일부를 본 사람이 그런 발설을 한 거죠.왜냐하면은 21일밤에 전남도청 지하에는 시민군본부가 차려졌고 6중 경비망을 쳐가지고 일반인은 들어가지 못했습니다.그리고 그날 밤에 바로 학생수습위원회가 결성됐는데 학생수습위원회에서도 결정된 사항을 시민군 본부장의 재가를 받기 위해서 도청을 출입할 때도 경비병들에게 일일이 다 허락을 받아야 될 정도로 출입을 일반인은 못했던 겁니다.그런데 거기에 딱 두 사람이 마음 놓고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누구냐 면은 바로 조갑제 그리고 광주시장이었습니다.그리고 소문으로 떠돌던 38구 시신은 망월동에 묻혀 있는 무연고12구 시신과 달리, 사망자 숫자에 포함되지 않은 그런 시신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시신이 도청 지하에 430구가 있었던 겁니다.그러니까 도청앞에 운집해 가지고 집회를 하는 실종자 가족들은 어디 시신이 있나? 이것에 대한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런 소문이 쫙 돌았던 겁니다.그런데 그런 소문을 기록을 한 사람이 신문팔이, 구두닦이, 양아치 이런 사람이 아니라, 바로 5.18 기간 10일동안 또한 부상자를 치료하거나 시신 처리를 했던 의사 선생님입니다.그리고 그거를 일기장에 썼던 것이고, 그 일기장을 바로 광주광역시 의사회에서 발행하는 책에 기고를 했던 것이죠. 그런데 그 의사선생님께서 38구의 시신이 있다 이런 소문을 일기장에 적으신 건데, 실질적으로는 430구가 맞는 것이 교도소에서 회수한 시신이 28구다 그렇고 나머지 402구는 03시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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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광주광역시 의사회에서 발간했던 5.18의료활동이라는 책에 발간위원인 조석필 의사선생님께서 그 당시에 자신의 일기장을 그 책에 기고를 한 겁니다.그 일기장 1980년 5월23일자의 도청앞 오후4시 군중집회 때 도청안 지하실 에 신분증도 없고 얼굴에는 하얀색 페인트가 칠해진 시신 38구가 있다 이런 소문이 쫙 돌았다는 겁니다.그 당시 그 조석필 의사선생님은 전남대 소아과 레지던트 1년차였다고 하면서 그런 기고를 한 겁니다. 여기서 왜 군중들한테 그런 소문이 돌았냐 하면은 시신을 찾고 있는 군중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그러니까 실종자 가족들은 어디 시신 있을까? 이거를 애타게 찾고 있었을 때 그 당시에 도청을 출입할 수 있었던 사람들 중에 시신의 일부를 본 사람이 그런 발설을 한 거죠.왜냐하면은 21일밤에 전남도청 지하에는 시민군본부가 차려졌고 6중 경비망을 쳐가지고 일반인은 들어가지 못했습니다.그리고 그날 밤에 바로 학생수습위원회가 결성됐는데 학생수습위원회에서도 결정된 사항을 시민군 본부장의 재가를 받기 위해서 도청을 출입할 때도 경비병들에게 일일이 다 허락을 받아야 될 정도로 출입을 일반인은 못했던 겁니다.그런데 거기에 딱 두 사람이 마음 놓고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누구냐 면은 바로 조갑제 그리고 광주시장이었습니다.그리고 소문으로 떠돌던 38구 시신은 망월동에 묻혀 있는 무연고12구 시신과 달리, 사망자 숫자에 포함되지 않은 그런 시신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시신이 도청 지하에 430구가 있었던 겁니다.그러니까 도청앞에 운집해 가지고 집회를 하는 실종자 가족들은 어디 시신이 있나? 이것에 대한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런 소문이 쫙 돌았던 겁니다.그런데 그런 소문을 기록을 한 사람이 신문팔이, 구두닦이, 양아치 이런 사람이 아니라, 바로 5.18 기간 10일동안 또한 부상자를 치료하거나 시신 처리를 했던 의사 선생님입니다.그리고 그거를 일기장에 썼던 것이고, 그 일기장을 바로 광주광역시 의사회에서 발행하는 책에 기고를 했던 것이죠. 그런데 그 의사선생님께서 38구의 시신이 있다 이런 소문을 일기장에 적으신 건데, 실질적으로는 430구가 맞는 것이 교도소에서 회수한 시신이 28구다 그렇고 나머지 402구는 03시30분(15:30)에서부터 04시(16:00)까지 11공수여단 62대대 4지역대 대원 65명이 수협빌딩 옥상에 배치돼서 400여발이 넘는 실탄으로 조준사격을 했을 때 사망한 시신들이고 수협빌딩에서 사격을 하는 거를 직접 목격을 한 증언자의 증언이 이거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입니다.이 430명이 바로 신분증이 없는 시신들이기 때문에 이것을 숨기기 위해서 도청앞 집단발포를 오후 1시반으로 정부가 조작을 한 겁니다. 여기서 정부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 당시의 사건을 책임을 졌던 전투교육사령부를 말하는 겁니다.만약에 신분증이 없는 시신 430구 이것이 확인이 되면은 당연히 그 시신들은 북한군이다 이런 주장이 대두될 게 뻔했기 때문에 그 시신을 몰래 처리한 겁니다. 그것도 신분을 확인 못하게 얼굴에 페인트칠을 해서 쓰레기차에 25구씩 실어서 청주로 보내 가지고 특별한 방법으로 처리를 했던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집단발포 시간을 1:30으로 억지로 꿰다 맞추어 놓은 거고 그거를 조갑제나 지만원 같은 사람들이 1시반이다 이렇게 지금까지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고, 조갑제는 거기서 한발 더 나가서 북한군은 안 왔다 이렇게 까지 해서 완전히 430구에 대한 시신과 집단 발포시간을 없애 버린 겁니다.바로 1996년도 광주광역시의 의사회에서 발간했던 5.18의료활동이라는 책에 당시 의사였던 분이 기고를 한 내용은 이런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서 오늘 이야기를 마치고자 합니다.언젠가는 타임지 표지에 사진을 누군가 제게 보내 줄 걸로 기대하고 있습니다.물론 그 사진이 없다고 해서 430명에 대한 증명을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 국민들이 봤을 때는 더 빨리 납득을 하기 때문에 있으면 더 좋죠.그 타임지 표지 사진을 갖고 계신 분들은 저에게 하루빨리 보내 주시기를 부탁드리면서 오늘 이야기를 마치고자 합니다.이제 5.18 특별법에 의해서 518때 발생했던 사실을 육군본부에 보고를 하지 않았던 전투교육사령부, 31사단, 20사단 모두가 엄벌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