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책 읽어주는 남자 [과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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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종호의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자살은 극단적 선택이 아니다」
6 minutes Posted Aug 4, 2022 at 6:26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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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인과 혐오를 넘어 이해와 공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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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에는 사람 도서관(Human Library)이 있다. 여느 도서관처럼 이곳에서는 일정 기간 동안 무료로 책을 대여해준다. 차이가 있다면 책이 아닌 ‘사람’을 대여해준다는 점이다. 대여 기간도 좀 다르다. 1-2주가 아닌 30분 동안 내가 빌린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소수 인종부터 에이즈 환자, 이민자, 조현병 환자, 노숙자, 트랜스젠더, 실직자 등 다양한 사람이 그들의 값진 시간을 자원한 덕에 이 도서관은 유지된다. 타인을 향한 낙인과 편견, 혐오를 완화하고 이해와 존중, 공존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이제 전 세계 80여 개 나라에서 운영되고 있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한 뒤, 자살 예방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고픈 생각에 정신과 의사로 전향한 예일대학교 나종호 교수는 첫 책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에서 사람 도서관 ‘사서’를 자처한다. 저자는 “마치 사람 도서관처럼 환자들과 다른 사람들 사이에 다리를 놓아줄 수 있(11쪽)”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다. 특히 정신과 의사로서 정신 질환과 함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따뜻한 환자들’의 모습을 소개하고 싶었다.
책에는 저자가 미국 메이요 클리닉과 뉴욕대학교 레지던트를 거쳐 예일대에서 중독 정신과 전임의(펠로우)를 하는 동안 만난 다양한 환자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말 그대로 인종도, 성별도, 나이도, 직업도, 성 정체성도 제각각이다. 공통점은 모두 사회적 약자이자 소수자라는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대신해 들려주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야기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저자는 “정신과 환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향한 대중의 낙인과 편견을 가장 효과적으로 줄이는 방법은 낙인이나 차별의 대상이 되는 집단 구성원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일(8쪽)”이라고 말한다. 내가 편견을 가지고 있는 대상이 내 눈앞에서 스스로의 의미 있는 삶을 소개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 자기도 모르게 간직하고 있던 편견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책에는 코펜하겐에서 일부러 ‘무슬림’을 대여해 이야기를 나눈 한 여성이, “무슬림 맞냐? 내가 알고 있던 무슬림 이미지와 일치하는 부분이 하나도 없”다고 말한 대목이 등장한다.(9~10쪽) 낙인과 편견이 허물어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