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 notes
CBS Radio 음악FM 93.9MHz 매일
스무 살 무렵부터 나는 바람이고 싶었다그러나 바람의 갈기털은커녕발목을 밧줄로 묶인 말뚝이 되어 있었다나는 수시로 뛰쳐나가고 싶었으나얼마쯤 가다가는 풀이 죽어 돌아오곤 하였다아버지는 담석증을 앓았고어머니는 막일을 하고 있었다삼십 대가 되자 업연은 더 무거워졌고허리엔 길마가 놓이고 입엔 재갈이 물려졌다나는 점점 짐을 끄는 한 마리 말처럼 변해갔고목축의 날들을 벗어나고자벌판을 몰아칠수록 사나운 짐승이 되어갔다나이가 더 들어 몸 여기저기가 병들면서비로소 나를 길들이던입맛의 굴레로부터 놓여나고바람을 선물로 받았을 때는이미 늙어 있었다문을 열고 나와도어릴 때부터 꿈꾸던 신선한 시간이머리칼을 날리며 동행하지 않았고발걸음은 탄력을 잃은 게 내려다보였다나는 이미 시선 밖에 있었다그래도 나는 늦은 나이에 얻은 이 바람이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고독이 가득하고숫되던 날부터 마음의 기슭을 긁어대던 회오리가생의 골짜기와 벼랑을 지나느슨한 일상의 평지에 이르러서도바람의 형상으로 남아 있는 게 고마웠다나는 이 여윈 바람의 손을 잡고한 걸음씩 여백을 만나며 나아갈 것이다자유,이 자유의 느낌과 향을 맛 본 사람은알고 있을 것이다이것이 우리에게 생의 무엇이었는지.도종환 시인의 <바람>어릴 땐 세찬 바람은 맞서 이겨내는 거라 생각했고한창일 땐 흐르는 바람을 잘 타야 성공한다고 믿었죠.하지만 지금은 바람이 남기고 간 여백을 보게 됩니다.몇 마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우리네 삶.구구절절한 사연들 모두 여백에 실어 보내고는괜찮다고, 잘해왔다고 스스로를 다독여봅니다.See omnystudio.com/listener for privacy information.

